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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온도> 비어 있는 분홍 의자

심혜진 명예기자 | 2019-03-22 오전 11:58:07
서른을 갓 넘긴 후배가 아기를 가졌다. 11주 차에 접어들었다며 단체대화방에 초음파 사진을 올렸다. 머리와 몸의 비율이 1대 1, 팔과 다리는 동글동글한 것이 뱃속에서부터 귀요미를 마구 발산하고 있다. 태명은 ‘안전’. 출산까지 아기가 뱃속에서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것이란다. 건강도 아니고 안전이라니, 의아하기도 하지만 한 생명이 무사히 태어나기엔 세상이 그리 안전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며칠 후 제물포역에서 전철을 탔다. 한낮 전철 안은 한산했다. 주안역에서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 무리가 서로 장난을 치며 요란스레 전철 안으로 들어왔다. 내 시선은 자연히 그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이 들어온 출입구 쪽엔 의자 한 줄이 모두 비어 있었다. 자리는 일곱 개, 청소년도 일곱 명. 그런데 그중 두 명이 자리에 앉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앉지 않았다. 양 끝의 두 자리는 분홍색 표시가 선명한 임산부 배려석.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 자리를 의식해 앉지 않았을 것이다. 순간 임신한 후배와 ‘안전’이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출산 지원을 위해 버스와 지하철에 임산부 배려석을 만든다는 정책이 나왔을 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중교통에 자리 몇 개 만든다고 낮은 출산율이 올라갈 리 없고, 그 자리가 임산부에게 돌아갈 가능성도 적으리라 예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임신과 출산은 어머니, 할머니 때부터 묵묵히 이어져 온, 그리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임산부를 다른 약자들보다 특별히 더 배려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특히, 겉으로 티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에 대한 인식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거의 무지에 가까울 정도로 무감각하다. 물론, 내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몇 년 전, 직접 겪은 입덧과 임신 초기의 피곤함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비록 뱃속 아이는 15주 차에 유산되었지만,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임신부의 상태와 처지를 이해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임산부는 그동안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했다. 오랫동안 임신과 출산, 유산의 생생한 경험을 드러내놓고 공유하지도 못했다. 요즘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터넷 카페에서 얼굴 모르는 이들과 글자로 정보를 나눌 뿐, 대부분 일상에선 쉬쉬한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육체적, 심리적 고통과 힘듦은 오로지 여성 혼자 감당할 몫이다. 표현해도 달라질 게 없고 오히려 불이익과 유난스럽다는 눈총을 받기 쉽다. 육아휴직과 수당은 대다수 비정규직 여성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런 이들에게 임산부 배려석이 가진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임산부 배려석은 가려져 있던 임산부라는 존재를 공공의 영역에 드러낸 첫 시도다. 분홍색 의자 하나로 인해, 우리는 바로 내 옆에 어쩌면 임산부가 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다. 분홍 의자 하나가 잊고 있던 임산부의 존재를 일깨우고 그들과 ‘함께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그래서 ‘비어 있는’ 분홍 의자는 양보와 배려의 의미를 넘어 무관심과 무지에 대한 사과이자 위로이며 존중의 적극적인 실천이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만삭의 무거움과 출산의 고통, 육아의 고됨을 그들은 묵묵히 통과해왔고 지금도 견디고 있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분홍 의자를 비워둠으로써 드러내고 싶다. 전철에서 만난 청소년들처럼, 분홍 의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존중받으며 태어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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