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기획/기고-구민과 함께하는 즐거운 미추홀구 나이스미추
메일보내기 인쇄하기

<시선의 온도> 의대에 가고 싶어요

심혜진 명예기자 | 2019-07-23 오후 12:30:29

"의대에 가고 싶은데, 중간고사 못 볼까봐 걱정이에요." 버스 옆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는 정민(가명). 지난 5~6, 부천의 한 중학교에 글쓰기 수업을 하러 갔다가 만난 아이다. 첫날 강의실 주변을 서성이던 정민이와 잠시 마주친 뒤 버스정류장에서 또 만났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몇 번 인사를 나누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성적 고민을 털어놓다니, 스트레스가 아주 심한 모양이었다. 세상 근심 다 짊어진 듯한 한숨에 내심 걱정도 됐다. 일주일 후 다시 정민이를 정류장에서 만났다. "시험 잘 봤니?", "시험이요? 전 그딴 거 관심 없어요.", "너 의대 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 "아, 쌤~ 그 말을 믿었어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 이런 걸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속았다고 해야 하나. 이 얘길 다른 선생님에게 했더니 "걔가 좀 엉뚱해요. 첨 본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었나 봐요"하며 웃는다. 어쨌든 우린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길 꽤 많이 나눴다.

 

정민이는 정말 성적에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 고등학교는 졸업장을 따기 위해 가는 거란다. "부모님이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 대요. 안 그러면 무시당한다고요.", "졸업을 하면 뭘 하고 싶은데?", "돈 벌어야죠. 돈은 정말 많이 벌고 싶어요. 술 같은 거 안 마시고 빨리 돈 모을 거예요.", "그다음엔?", "번 돈으로 잘 살아야죠."

 

정민이는 확신에 찬 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보탤 수 없었다. "맞아, 넌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응원의 말은 의대에 가겠다던 정민이의 말만큼이나 거짓이고, 공허한 말일 것이다.

 

정민이와 헤어진 후, 잠시 그 아이의 미래를 그려봤다.

 

아마도 그는 성적순으로 서열화된 특성화고 중 어딘가에 입학할 것이다. 답을 알려 줘도 공부를 안 한다는 학생들 틈에서 어쩌면 생전 처음 상위권 등수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3학년이 되면 현장 실습을 가겠지. 아마 처음 들어보는 중소기업, 아니면 영세업체일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전공과 다른 일터로 배치될 수도 있다. 그곳에서 그는 어떤 지위에서, 어느 수준의 월급을 받고 일할 수 있을까. 정민이의 돈 많이 버는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나는 막막해졌다.

 

어른들은 알고 있다. 학교의 서열화는 사회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는 걸. 고졸-전문대졸-대졸, 지방대-수도권대-서울지역대학-일류대, 비정규직-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서열, 그리고 그로 인한 차별은 어느새 피부처럼 당연한 것이 돼버렸다. 타고난 신분이라도 되는 양, 이제 뛰어넘기도 어렵다. 심지어 사는 곳(=아파트)이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는 광고가 버젓이 흘러나오는 최첨단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정민이가 설 자린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아닐까.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가. 벌써 대학가길 포기한 정민이에게 어른으로서 "정신 차리고 공부해라"라고 따끔한 훈계는 못할망정 웬 아이 앞날에 어두운 장막을 드리우는 몹쓸 생각인가. 하지만 백번 생각해도 다른 결론은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니 의대운운하며 자조 섞인 농을 걸던 아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래저래 치이는 인생에서 그런 농이라도 쳐야 잠시나마 진지한 관심을, 따뜻한 격려를 받을 수 있으리란걸. 정말 정신 차려야 할 것은 누구일까. 나도 모르는 새 기성세대가 돼버린 나 자신이 참 미안하고 씁쓸하다.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의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출처표시_상업용금지_변경금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