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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온도>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심혜진 명예기자 | 2019-09-24 오후 1:44:38

최근 지인에게 독특한 경험담을 들었다. 얼마 전 그는 한 동물권 단체에서 진행하는 `비질`이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도축장으로 들어가려는 트럭을 막아서고 운전기사에게 잠시만 동물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한 뒤 소와 돼지에게 물을 주는 것이다.

 

도살되기 직전 소와 돼지는 며칠 동안 물과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 몹시 목이 마르고 배고픈 상태라 한다. 곧 고기가 될 동물에게 음식을 주는 건 인력 낭비, 돈 낭비일 뿐만 아니라 이동 중 똥오줌을 싸 번거로운 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이 이 활동의 목적이라 했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으로 꽤 오래전부터 채식을 하고 있는 그는 적극적 실천의 방법으로 이 체험에 나섰다.

 

그냥 지나가는 대부분의 트럭 사이에서 몇몇 기사들이 이들의 요구에 차를 멈췄다. 덕분에 지인은 잠시나마 소와 돼지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동물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충혈된 눈으로 입에서 거품을 내뱉는 소와 눈가가 짓무르고 피부가 괴사한 돼지, 젖에서 피가 흐르는 젖소··· 잠시 눈이 마주친 소의 눈망울이 자꾸 생각나 이후 며칠 동안 울었다고 했다. 이 얘길 전하는 동안에도 그의 목소리는 내내 떨렸다.

 

웬일일까. 그의 이야길 들으며 나는 자꾸 마음이 불편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을 모두 죄인으로 만드는 것 같아 거북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척했지만 속으론 딴청을 부렸다. 이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그는 넋이 나간 듯 공허한 표정으로 급기야 눈물까지 찍어댔다. 겨우 만남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엔 닭곰탕을 먹었다. 오전에 한 솥 가득 끓여놓은 것이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삶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뼈에 붙은 살을 야무지게 발라냈다.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려는 순간, 난데없이 소의 새카만 눈동자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닭곰탕 먹는데 소가 웬 말!`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날따라 퍽퍽한 살코기가 목구멍이 콱 막혀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한때 나도 채식을 했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무렵, 축산 현실을 다룬 책을 본 직후부터였다. 먹을 게 많은 데 굳이 멀쩡히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 내 식욕을 채우기가 몹시 미안했다. 아주 큰 결단이나 각오 없이 그냥 편한 마음으로,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든 이상하고 까탈스러운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간식과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2년을 버텼다. 채식한다는 자부심과 가벼워진 몸의 느낌이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채식의 삶을 무너트린 건 야근과 스트레스가 많은 업무 환경이었다. 잠과 쉼이 부족하고 피로에 찌든 일상에서, 나는 채소를 썰고 도시락 설거지할 시간을 가장 먼저 잘라냈다. 달걀을, 멸치를, 햄버거를 점차 먹게 됐다. 주위에선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채식이 무너진 자리엔 생명에 대한 죄책감도 자취를 감췄다. 15년이 지나는 사이 나는 달에 한 번은 치킨을 먹어야 하는, 치킨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15년은 닭의 수명이기도 했다.

 

지인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때의 실패를 맞닥뜨렸다. 나는 채식 실패자, 다시 시작해 봐야 어차피 또 실패할 사람.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불편함의 실체는 실패에 대한 자책이었다.

 

씁쓸한 마음을 달래려 밤 산책을 나섰다. 인기척에 놀란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차 밑에서 몸을 움츠리며 눈빛을 번득였다. 아, 나란 존재는 너희들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까지 무감각한 포식자로, 가해자로 살 텐가. 그저 고기를 안 먹겠다는 결심이 내겐 왜 이렇게나 어려운 걸까. 동물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제 명대로 살기 어려운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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