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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의 미추愛세이> 당신의 올해는 몇 점입니까?

나이스미추 편집의원 | 2019-11-25 오후 2:00:55

올해도 동네 빵집 입구에 현수막이 걸렸다. 매년 빵집 주인장은 수능 한 달 전쯤 되면 수험생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매장 입구에 건다. 이번 응원 문구는 `수험생`을 삼행시로 풀었다. `-수능을 치르는 이들에게, -험난한 수능공부 하느라 고생 많았소! -생각보다 시험이 쉬울 것이오! 내 장담하리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마지막을 `우리 수험생들의 선택과 집중을 응원합니다!`라며 힘을 보탰다.

나는 주인장의 마음도 갓 구운 빵처럼 부드럽고 향긋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는 바로 `우리`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수험생들의 힘겹고 외로운 시간을 곁에서 다독여주는 느낌이라 좋았다.(이 글이 세상에 나갔을 땐 수능이 끝난 지 10여 일이 지났을 때라 고생했을 수험생들에게 미리 격려를 보낸다. `시험 보느라 수고했습니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하는 수능 만점자도 간혹 있지만 대한민국 수험생에게 공부는 상대를 이겨야 내가 사는 쿵푸(工夫). 수능을 보는 단 하루를 위해 초등학교부터 10여 년을 친구들과 경쟁해야 한다. 수능이 끝난다고 경쟁도 끝나는 것은 아니다. 힘겨운 경쟁 끝에 대학에 들어가도 낭만은 잠깐, 곧바로 취업경쟁에 내몰리고, 간신히 취업한 회사에서는 승진경쟁에 치이고, 은퇴 후엔 피 같은 퇴직금으로 차린 가게에서 옆집과 경쟁하는 것이 장삼이사의 인생이다.

인생 레이스에서 겉으로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보다 앞서는지 감시하며 `우리는 남이다`라는 결론을 확인할 뿐이다. 결국 `우리`라는 말이 갖는 영역은 점점 축소돼 한 지붕 아래에서 한솥밥 먹는 식구 정도로 좁혀진 게 현실이다. 식구 외에는 `우리나라`, `우리 동네`처럼 습관적으로 붙여 쓰는 관용어구에서나 간신히 생명을 유지한다.

`우리`가 사라진 자리엔 점수가 창궐한다. 잔인한 숫자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점수는 1%에겐 승리의 기쁨이지만 99%에겐 슬픔의 숫자가 된다. `우리`를 너와 남으로, 승자와 패자로 가르는 숫자가 점수인 것이다.

점수를 1도 내지 못한 0. 우리는 `0`이라 쓰고 ``이라 읽는다. `0`의 생김새를 빵에 빗댄 것일 터인데, 아무것도 없다는 `0`이 안쓰러워 부드럽고 달콤한 ``으로 위로하기 위함은 아닐까 싶다. (사진 속 현수막은 빵집, `빵점()`에 걸려있었다.)

2019년이 저물고 있다. 당신의 올해 점수는 몇 점인가? 평가자는 당신이고, 자신에게 먼저 위로해주는 연말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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