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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온도> 미스터트롯과 전국노래자랑

심혜진 명예기자 | 2020-02-24 오후 4:16:36

올해 71세인 엄마와 나는 한동네 산다. 어느 날 밤 일상적인 통화를 하던 중 엄마가 전화를 급히 끊었다. "아이고, 지금 몇 시야, 얘기 다 했으면 빨리 끊어." -. 거의 매일 연락을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통화를 중단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무슨 일인 걸까 궁금했다. 며칠 후 동네에서 엄마와 밥을 먹으며 물었다. 엄마 눈이 반짝 빛났다.

 

", `미스터트롯` 하는 날이었거든. 너랑 통화하느라 앞부분을 놓쳤잖아. 그래도 괜찮아. 재방송 봤거든."

 

그러고 보니 설 연휴에 시댁에 갔을 때 텔레비전에서 웬 젊고 어린 남성들이 트로트를 멋들어지게 부르며 실력을 겨루는 걸 얼핏 보긴 했다. 설 특집 방송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요즘 유행하는 방송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 `유산슬`이 개그맨 유재석과 같은 사람이란 것도 며칠 전에야 알았으니 알만하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 "엄청 재밌지, 그거 지금 인기 최고야!" 엄마는 출연자들의 이름을 하나, 둘 대기 시작했다. 누구는 성악가 출신이고, 누구는 초등학생인데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누구는 남진의 제자고, 누구는 미추홀구 학익고를 나왔고. 미리 외우기라도 한 듯 줄줄 읊었다. 놀라웠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텔레비전 방송에 푹 빠진 건 드문 일이다. 엄마는 `가요무대` 등 서너 개의 노래 프로그램과 저녁 뉴스를 볼 때를 빼곤 텔레비전을 틀지 않는다. 어떻게 `미스터트롯`을 알게 된 걸까.

 

"인터넷에서 정동원이 나온다는 기사를 읽고 방송 날짜를 적어뒀었지. 전국노래자랑에 나왔던 초등학생인데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내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지. 나중에 반드시 크게 될 테니 두고 보라고 말이지."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전국노래자랑 팬인 엄마는 한 인상적인 출연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가 마침 그가 텔레비전에 출연한다는 기사를 스마트폰으로 접하고 그 방송을 보게 된 거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음악 방송을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땐 늘 집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요즘도 엄마네 가면 아주 오래전 축음기에서 나왔을 법한 노래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이런 노래가 좋아?"하고 물으면 "그럼, 엄마 처녀 때 듣던 노래들이야"라고 답하곤 했다. 처녀시절 듣던 노래는 어느덧 라디오나 `가요무대`에서나 겨우 들을 수 있고, 중년에 듣던 노래들은 `전국노래자랑`에서 듣는다.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다 생각나, 나는 아직 40대 같은데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모르겠어."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젊은 시절 접했던 문화로 회귀한다고 한다. 이는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도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버드대학 연구에 의하면 70~80대 노인들을 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30년 전과 똑같이 만든 세트장에서 1주일 동안 지내게 했더니,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이 좋아지고 심지어 피부까지 밝아졌다고 한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라 불리는 이 연구는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다큐멘터리로 방영돼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엄마에게도 과거의 노래를 듣는 일은, 단지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시절의 열정과 희망을 불러와 존재감과 심리적 안정을 찾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지난날을 위로하는 일이다. "임영웅이 `일편단심 민들레야`부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막내 낳고 얼마 안 돼서 들은 노랜데, 걔가 벌써 마흔이 넘었으니." , 우리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도 하나 보다.

 

`미스터트롯`이 끝나면 엄마는 다시 `가요무대``전국노래자랑`을 기다리게 되겠지. 엄마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면 좋으련만. 구매력이 없는 노인층을 위한 문화를 일상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미스터트롯` 방송을 모조리 찾아서 볼 생각이다. 한창 신이 난 엄마와 보조를 맞추고 싶다. 이 또한 내 `한창때`의 추억이 될 것이므로. 그리하여 언젠가 나 역시 트로트를 찾아 듣게 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 시절의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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