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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온도> 밥 굶을 걱정

심혜진 명예기자 | 2020-03-25 오전 11:23:10

점심시간마다 북적이던 식당이 휑하다. 띄엄띄엄 앉은 손님들은 여느 때보다 말소리가 작다. 머리를 자르러 간 미장원에도 사람이 없긴 마찬가지다. 특히 파마머리를 하러 오는 손님이 확 줄었다 한다. 마스크를 쓴 미용사의 한숨이 깊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다. 어딜 가도 사람이 없다. 물론 내게도 파장이 있다. 3월 개강하려 했던 글쓰기 수업을 열지 못하고 있다. 강의가 미뤄지는 사이 한 사람이 수강을 취소했다. 이후 휴대폰 문자 알림이 울릴 때마다 또 취소 연락인가 싶어 흠칫 놀란다. 글쓰기와 강의는 내 생계다. 수업이 미뤄지는 동안 내 밥줄도 가늘어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무너진 일상이라니. 이게 사는 건가.

그런데 역시 모든 일엔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법이다. 코로나19로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워진 이 판국에 정치권에서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다름 아닌 `기본소득`이다. 어느 지역 자치단체장은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 원을 일시적으로 지급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제안한다"고 운을 뗐고, 또 다른 지자체장은 "응원하며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정부는 당장 논의하기 어렵다며 선을 그었지만, 기본소득이 주목을 끌었다는 점, 그리고 향후 언제든 다시 논의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나는 무척 반가웠다.

기본소득은 간단히 말해 `일정한 현금``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그들이 언급한 재난기본소득은 엄밀히 말해 기본소득이 아니다.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재난 수당` 정도로 칭하면 적당할 듯하다. 어쩌면 기본소득 개념이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무노동 무임금의 가치 아래 어떻게든 밥벌이를 하기 위해 채찍질하며 살아온 이들에겐 당연한 의문일지 모른다.

그런데 모든 노동이 임금으로 환산되는 건 아니다. 기업의 이익에 복무한 사람들이 받는 급여가 임금 아니던가. 육아와 가사노동, 노인 돌봄, 거리의 예술가, 자원활동가들이 회사에서 기업의 이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보다 가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노동이고 무엇이 아닌지, 우리에겐 애초에 판단하고 결정할 기회도, 권리도 없었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데 기여한 모든 이에게 제 몫을 돌려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자에게도 똑같이 돌아간다.

사실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불안정 노동의 위기를 극복할 최선의 대책이자 유일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꼽는다. 기계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중국엔 노동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무인 자동차 공장이 24시간 돌아간다. 기계는 밥을 먹지 않고, 휴식이나 수면이 필요치 않다. 노조도 만들지 않고 보너스를 달라며 파업을 하지도 않는다. 기업 입장에선 사람보다 기계가 더 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계의 단점은 소비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에서 생산한 물건은 오직 사람만이 돈을 주고 살 수 있다. 그 돈은 누가 마련해 줄 것인가.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인간이란 어떻게 먹고사는 게 최선인가`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매달 30만 원을 받는다고 해서 글을 안 쓸 것도, 강의를 안 할 것도 아니다. 설사 50만 원을 받더라도 나는 이 둘을 관두지 않을 것이다. 내겐 밥줄이자 존재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밥 굶을 걱정 때문에 쓰기 싫은 글을 억지로 쓰는 일은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를 잠시 쉬며 재충전을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로 강의를 못 열게 될까 봐, 정말로 밥을 굶게 될까 봐 진심 걱정이다. 아마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임대료 인하나 긴급대출로는 해결할 수 없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본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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