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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온도> 기억을 되새긴다

심혜진 명예기자 | 2020-04-24 오후 6:20:02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몇몇 지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다고는 해도 사람을 아예 안 보고 살 순 없다. 일 때문에 만난다는 게 그만 수다에 불이 붙고 말았다. 대화가,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수다는 한 친구의 타투 이야기로 번졌다. 그 친구는 여름이 오기 전 새로운 무늬를 새기려 한다며 디자인을 고심했다. "노란 리본 어때요?"누군가 말했다. 잠시 말이

 

없던 친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 그거 좋네요. 정말 잊지 않을 수 있겠어요."

 

또 다른 이가 말을 받았다. "저는 6년 동안 청주 끊고 소주만 마셨잖아요." 술자리에서 늘 달달한 청주를 즐겼다는 그는 `그날` 이후 쓰디쓴 소주를 삼킨다고 했다. `쓴맛`으로 쓰라린 기억을 되새기기 위함이란다. 그밖에도 저마다 `그날을 기억하고 있음`을 간증하듯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시 4월이 왔구나.`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아무 보탤 말이 없는 내가 부끄러웠다. 가방에 노란 리본이라도 달려 있었다면 위안이 되었을 텐데 그마저 어디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물론 나라고 잊었을 리 없다. 4.16가족극단의 연극을 보러 갔고, 관련 재단에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2년 전 일이다.

 

나는 세월호를 잊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하다. 이 공동체에서 더는 그와 같은 참사가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무거운 슬픔과 혼돈을 또 견딜 만큼 내 정신은 강인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사건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왜 그 귀한 생명들이 산 채로 물에 잠기는 걸 바라만 봤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이 단순한 물음에 국가는 한 번도 제대로 답한 적이 없다.

 

그동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건, 아직 `잊지 않았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는 사이 그날의 처절했던 감각으로부터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무뎌지는 감각을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자 자기

 

기만이다. 내가 잊지 말아야 했던 건 `세월호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날의 슬픔과 혼돈, 분노와 같은 감각이었다. 감정이 사라진 기억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테니까.

 

이런 나를 일깨우려는 듯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작은 움직임들이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은 동네 작은도서관 페이스북에는 세월호 관련 책을 전시해놓은 사진이 올라왔다. 이른바 `온라인 전시`. 세월호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프로필을 수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서둘러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이참에 유튜브에서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감독 이승준)도 봤다.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라는 소식을 듣고 `나중에 봐야지` 생각했다가 영화 `기생충` 수상에 들떠 그만 잊고 말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책상 서랍에서 노란 리본을 하나 찾아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늘 매고 다니는 가방에 매달았다. 이번엔 잊지 않겠다는 약속 대신 되새기겠다는 다짐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감각은 또다시 무뎌질 것이 분명하다. 무뎌지는 것까진 어쩔 수 없지만 그대로 방치할지 말지는 내 선택이다. 적어도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는 날까진 감각을 되새기려 애쓰고 싶다. 리본을 달고, 관련 책을 읽고, 영상을 볼 것이다. 기억이 흐려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다. 슬픈 4월의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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