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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의 미추愛세이> 길

나이스미추 편집위원 | 2020-05-25 오전 8:50:50

 어머니는 꽃단장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도 막 세수를 하고 나오신 참이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아침에 부모님 댁에 들렀다. 카네이션 바구니를 드리고 건강은 어떠신지, 편찮은 다리는 좀 나아졌는지 몇 마디 여쭙고 나왔다.

 

중년이 돼서야 조금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버지는 늘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요즘 일상화된 사회적 거리인 2m는 커녕 마음의 거리는 한 200m쯤 떨어져 있었다. 명절과 생신 때를 제외하면 가뭄에 콩 나듯 잠깐 들러 눈도장만 찍고 휙 사라지곤 했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늘 평행선이 그어져 있었다. 같이 놓여 있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철길처럼.

 

여든 중반의 아버지는 쇠약해지셨지만 쇠고집은 그대로다.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면서 동네 산책을 다시 시작하셨는데, 지팡이를 여전히 안 갖고 나가신다. 단지 `버릇이 될까 봐.` 친구들처럼 공부하고 싶어 초등학교도 마치기 전 고향을 탈출해 낯선 곳에서 홀로서기를 하며 쌓인 아버지는 내게 `의지(依支)하지 않는 의지(意志)`를 시간 날 때마다 말씀하셨다. 난 그런 아버지가 부담스러웠지만, 돌이켜보면 사회의 오랜 관습이나 인식으로부터 일찌감치 거리두기를 했기에 당신의 꿈을 이뤘으리라 짐작된다. 지긋지긋한 농사가 아니라 글을 배워 선생님이 되는 게 자신의 길이라 믿고 그 길을 꿋꿋이 걸은 아버지가 다시 보였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미추홀구 시민공원역 인근 공사현장(옛 주안초등학교 자리)을 지나는데 파란 하늘에 하얀 사선이 그어져 있다. 비행기가 지나간 길이다. 보이지 않아도 수백 명을 태운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늘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양 새로웠다.

 

수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늘길을 통해 보이지 않는 먼 나라로 가고 또 오는 세상이라니. 보이지 않는 길에서도 수백 대의 비행기가 충돌 없이 시속 900로 날 수 있다니. 강렬한 태양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 지금 저 하늘엔 수없이 많은 별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집어놓는 현실 아닌가.

 

보이지 않는 것을 없는 것이라 착각하고 살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버지의 길도, 나의 길도.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을 거라 단정하지 말아야겠다. 길은 늘 있다. 다만 의지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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