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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온도> 1인분의 오롯한 삶

심혜진 명예기자 | 2020-05-25 오전 8:51:29

 남편과 각방을 쓰고 있다. 새로 들어온 고양이와 기존 고양이가 사이가 좋지 않아 남편과 각각 한 마리씩 맡아 잠을 자게 되면서부터다. 그동안 작은방을 내 작업실로 사용해 온 터라 자연스럽게 작은방이 내 차지가 됐다.

작은방은 정말 작았다. 책상과 책꽂이, 피아노만으로도 방이 꽉 찼다. 좁은 방에서 아침저녁으로 이불을 폈다 갰다 하려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침대 놓을 공간은 나오지 않았고 고양이들은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전기장판까지 접었다 폈다 하며 겨울을 보내는 동안 나는 이 작은방에 진절머리가 났다.

반면 남편이 쓰는 방은 내 방보다 두 배는 넓었다. 퀸 사이즈 침대와 책꽂이를 놓고도 공간이 많이 남아 가벽을 세워 옷방까지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지금까지 내가 들어가 본 집 가운데 원룸을 제외한 모든 집에는 큰방과 작은방이 있었다. 이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작은방에서 생활해보니 한 집의 방 크기가 이렇게 대놓고 차이가 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큰방은 부부용이다. 두 사람이 지내려면 그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큰방에는 주로 장롱이 있고 계절별 이불을 비롯해 여러 공용 물품이 그 속에 들어간다. 거실이 없는 경우 큰방에서 가족들은 밥도 먹고 TV도 본다. 작은방은 주로 자녀의 생활공간이다.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한 가족이 살기엔 별 불편이 없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주거용 건물 내부가 이렇게 큰방과 작은방으로 구성돼 있다는 건 문제가 있다. `부부와 자녀`가 살 것을 전제로 한 구조, 즉 부부 중심의 가족 이외의 다양한 조합을 상상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부부가 아닌 성인 두 사람이, 크기가 비슷한 방 두 개가 있는 집을 얻기란 쉽지 않다. 주거비를 함께 내더라도 공간을 평등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작은방은 성인 한 사람의 짐을 다 풀어놓기에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내 경우처럼 말이다.

비슷하고 답답한 집 구조에 생각도 갇힌 탓일까. 가족 이외의 동거 조합(이들은 연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을 떠올리려니 구체적인 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족을 이루기 위해 꽤 많은 비용과 희생이 필요한 이 나라에서, 다양한 생활공동체의 가능성마저 차단당한 이들에게 허용된 건 1인 가구의 삶뿐이다.

오래전, 친한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나중에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다 같이 한집에서 살면 좋겠다고.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고 공용의 커다란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집을 구상하며 한껏 신이 났던 기억이 난다. 사생활이 보장된 내 공간과 공유 공간이 어우러진 집에 모여 살면 돈도 적게 들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소소한 갈등이야 사람 사는 곳 어디라고 없을까. 가족이란 허상 앞에 무시되는 폭력과 착취는 또 얼마나 많은가.

공간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우리 집의 경우 내가 고달파진 대신 고양이의 삶이 평온해졌다. 다양한 동거조합을 품을 수 있는 집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미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고, 비혼과 비출산 인구도 늘어간다.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이들이 이전의 `가족 중심의 삶`으로 돌아갈 확률은 낮다. 큰방, 작은방으로 정형화된 집 구조는 이런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혼자 걷기엔 외롭고 힘든 인생길. 나와 남편이 같은 크기의 방을 동등하게 누리며 살기 위해선 정녕 내 손으로 집을 짓는 방법밖엔 없는 걸까. 따로 또 같이, 1인분의 오롯한 삶을 살 방도를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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