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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온도> 에어컨 천국, 선풍기 지옥

심혜진 명예기자 | 2020-06-24 오후 5:54:16

침대에서 전기장판을 걷어낸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비까지 내려 더 후텁지근하다. 서랍을 뒤져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초여름 더위가 이렇게 독할진대 한여름은 어떻게 날지 벌써 숨이 막힌다.

 

지난 4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의 발표에 따르면, 기후관측 역사상 올해가 가장 더운 해가 될 가능성이 74.7%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역사상 가장 더운 상위 5개 연도에 포함될 가능성은 무려 99.9%에 달했다.

 

지금까지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이었다. 수박이나 아이스크림 따위로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던, 오직 에어컨 바람만이 구원이고 휴식이었던 무겁고 진득한 더위를 나는 기억한다. 집에서 요리하는 횟수가 줄고 샤워는 찬물로 하다 보니 8월 가스요금이 3천 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선풍기 바람을 많이 쐬었던지 난생처음 눈에 안구건조증이 생겼다. 결국 그해 가을, 이듬해를 대비해 에어컨을 설치했다.

 

그때와 견줄만한 더위가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마 체감온도로는 역대급이 될 것 같다. 2016년엔 쓰지 않아도 되었던 마스크를 올해는 써야 하니까.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최소 몇 달은 마스크를 써야 할 터다. 7~8월 불볕더위에 마스크로 숨을 내뱉으며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현기증이 난다.

 

몇 해 전부터 지자체에서는 폭염 기간에 경로당, 복지관, 행정복지센터 등 일부 공공건물을 개방해 무더위쉼터를 마련하고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가능할지 의문이다. 밀폐된 공간에 여러 사람을 모아 놓고 에어컨을 트는 건 코로나19 시대엔 위험천만한 일이다.

 

최근 뉴스를 보니 한 지자체에서 `양산쓰기 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양산을 쓰면 체감온도를 10도가량 낮춰주고, 자연스레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심 양산`을 대여할 예정이라는데, 썩 만족스러운 대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진짜 `대책`이 필요한 이들, 저소득층 가구나 쪽방촌 주민 등 소외계층의 더위는 양산으로 가릴 수 없다. 그들이 더위와 맞서는 최전방은 바로 집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안에서 밤낮으로 더위와 싸운다. 그러나 이겨낼 방도는 없다. 더위가 스스로 후퇴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미국 뉴욕에선 5월부터 저소득층 노인들의 가정에 에어컨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료 지원도 모색 중이고, 가난한 시민들이 일시적으로 요금 납부를 못하더라도 바로 전기를 끊는 일을 자제해 달라고 전기회사들에게 요청하고 있다.

 

더위에 지칠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에어컨이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더위를 물리치고 삶의 질을 높여줄 최선의 해답, 냉방기구. 다른 묘안이 있을까? 그랬다면 나는 굳이 내가 시원해지는 만큼 바깥으로 열기를 내뿜는 에어컨을 내 집에 설치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에어컨 천국, 선풍기 지옥`을 이미 나는 경험한 터다.

 

에어컨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풍기가 있던 자리에 작은 냉풍기 한 대를 들여놓은 누군가를, 그리고 그가 보낼 이번 여름을 상상해본다. 전기료 걱정 없이 냉풍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는 가장 시원해서 가장 따뜻한, 특별한 여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감상적인 상상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겐 치열한 현실일 수 있다. 꼭 필요한 직접적인 지원이 어려운 이들에게 닿길 바란다. 그러면 나도 조금은 마음 편히 에어컨을 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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