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기획/기고-구민과 함께하는 즐거운 미추홀구 나이스미추
메일보내기 인쇄하기

이런 나무도 있는데, 나는…

나이스미추 편집위원 | 2020-07-24 오전 10:55:02

7월이 되자 6월과는 햇볕의 농도가 달라졌다. 낮엔 잠깐 산책만 해도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나마 해가 지면 선선한 바람이 제법 불어주지만 얼마 안 있으면 `열대야`, `찜통더위`, `기록적인 온도`, `살인적 폭염` 등 살벌하면서도 익숙한 말들이 햇볕만큼이나 쏟아질 것이다.

 

올 들어 가장 더웠다는 날,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요즘 여러 가지 우울한 일들이 장마처럼 이어지던 차에 더위를 핑계로 한갓진 곳에서 여유를 가져볼 요량이었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시원하다 못해 서늘했다. 천장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아무리 가장 더운 날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에어컨을 세게 켤 정도는 아닌 듯해 종업원에게 약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떨떠름한 표정이다. 아마 다른 손님들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커다란 통창은 열 수도 없다. 사방을 꼭꼭 막아 자연바람을 차단한 채 인공바람이라니, 가장 덥다는 날 `떨면서` 점심을 먹다니. 간신히 밥을 먹고 식당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저수지의 넓은 수면은 잔잔함을 유지하면서 햇빛을 튕기고 있었다. 가끔 커다란 날개를 가진 하얀 새(아마 백로인 듯)가 우아하게 날고, 오리 몇 마리가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나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를 동작으로 놀았다(노는 게 아니라 점심 식사 중일지도 모른다). 덥다며 짜증내는 녀석은 없어 보였다. 여유가 뭔지 아는 녀석들이다.

 

나무 그늘을 찾던 중 커다랗고 요상한 나무가 한눈에 확 들어왔다. 한 뿌리에서 쌍둥이 가지가 곧게 자란 것이 먼저 눈길을 끌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허리 높이쯤에 `수술` 자국이 크게 남은 은행나무였다. 반쯤 잘린 상태에서도 살기 위해 스스로 봉합한 모양이었다. 고통을 딛고 자란 나무는 크고 씩씩해 보였다. 입이 있다면 `이건 흉터가 아니라 허리띠야`라며 농담도 할지 싶다. 더워도 추워도 묵묵히 여유를 즐기는 나무를 보며, 허리가 잘릴 뻔해도 스스로 끈질기게 이어가는 생명의 힘을 보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우울함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올 여름 최악의 무더위가 올 것이란다. 정부도 사상 최대 전력 공급능력 확보에 나섰다고 한다. 폭염대책으로 전력 확보가 우선인 현실은 아이러니다.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숱하게 사라진 나무들은 본디 여름에 그늘을 주고 시원한 바람을 제공한 고마운 생명들 아니던가.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의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출처표시_상업용금지_변경금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