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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고기일까?
심혜진 명예기자 | 2020-07-24 오전 10:56:35

새벽이의 돌잔치를 인터넷 라이브로 생중계하는 날. 커다란 축하 케이크를 만든다기에 미리 돈을 조금 보낸 터였다. 새벽이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싶어서 핸드폰 알람을 맞춰놓고 다섯 시가 되길 기다렸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일종)에 접속했다. 화면에 나온 건 100이 넘는 돼지 한 마리. 이 녀석이 바로 돌잔치의 주인공 새벽이다.

한 농장에서 생활하는 새벽이의 하루는 날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영상으로 올라온다. 새벽이가 농장을 산책하며 풀을 뜯고 진흙탕에 몸을 담근 채 쉬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지어진다. 사과와 오이를 땅콩 먹듯 씹어 삼키고 수박 반 통에 코를 박고 과즙을 쭉쭉 빨아 먹을 땐 내 입안에도 침이 고인다.

언젠가 골치 아픈 일로 몹시 지쳤던 날, 인스타그램에 노을빛을 받으며 흙바닥에 앉아 있는 새벽이 사진이 올라왔다. 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새벽이의 옆모습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돼지도 생각이란 걸 할까.

새벽이는 그저 그 순간에 머물며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번뇌를 알아차리고 생각을 흘려보내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 이건 높은 난이도의 명상 아닌가! 그때 문득, 새벽이가 자기만의 욕구와 감각이 있는 오롯한 존재, 느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의 평화가 마냥 부럽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사실 새벽이는 여섯 달 전에 죽을 운명이었다. 지난해 7, 경기도 화성의 한 양돈농장에서 5천여 마리의 돼지 중 한 마리로 태어났다. 동물권 활동가들이 그 농장에 들어가 생후 2주 차의 새벽이를 데리고 나왔다. 이후 새벽이는 두 달 동안 활동가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몸집이 커진 뒤부터는 유기견 보호소로 옮겼다. 그리고 지난 5, 경기도 남양주 `생추어리` 농장에 정착했다. 새벽이가 일생을 보낼 장소다.

이곳에는 새벽이의 집과 그늘막, 진흙 목욕을 할 수 있는 웅덩이가 있다. 근처에 채소밭도 마련돼 있다. 이른바 `동물 구조` 활동이다. 구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돼지나 닭, 소를 무감각한 고기로만 대하는 사회에, 이들에게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새벽이는 단순히 구조된 돼지 한 마리가 아닌, 동물을 대표하는 존재다. 6개월 만에 도축되는 여느 돼지들과 달리 새벽이는 1년을 살아남았다. 앞으로 또 다른 농장에서 구조된 다른 종의 동물들과 어울려 살게 될 거다.

도대체 돼지를 데려다가 무슨 호사스러운 짓을 하는 거냐 물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에게 새벽이는 묻는다. 자신은 왜 그렇게 살면 안 되는지. 만일, 수준 높은 지적능력을 가진 외계생명체가 지구에 침범해 `미개한` 인간을 더럽고 좁은 우리에 가둬 놓고, 이빨을 다 뽑고 오로지 건빵만을 주면서 살을 찌운 뒤 잡아먹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인간은 맛있는 걸 먹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떠나고, 힘들 땐 푹 쉬어야 하는, 행복해야 하는 존재이니까. 외계생명체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직 고기로만 대한다고 해도 몸의 감각과 고통, 자유와 행복을 향한 열망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돼지에게도 자유로운 본성을 따르며 살고 싶은 욕구와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 나는 새벽이를 통해 분명히 알았다.

기다렸던 생일 케이크를 공개하는 시간. 사과와 오이 등 채소와 과일이 넓적한 그릇에 수북하다. 맨 위엔 하얀색 크림도 올라가 있다. 크림의 정체는 수제 두부. 새벽이는 두부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케이크가 맘에 드는지 새벽이는 순식간에 그릇을 싹 비웠다. 이 맛있는 케이크를 앞으로 열 번에서 열 다섯 번은 더 먹을 수 있을 거다. 그게 원래 돼지의 수명이니까.

새벽이의 형제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의 행방을 우리가 모를 리 없다. 그저 먹을 뿐이다. 돼지는 정말, 고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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